‘컷 패스트볼’을 완벽하게 구사한 마리아노 리베라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652개의 세이브를 기록하고 13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5개를 수집한 뒤 사상 처음 기자단 투포 만장일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
이미 야구계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경험한 마리아노 리베라는 은퇴 후 세계 평화와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백악관에 초청되어 대통령 자유메달 훈장을 받는 또 하나의 영예를 얻었다.
이 훈장은 미국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 중 하나로 꼽히는데 처음 시상한 1963년 이후 스포츠 분야에서는 제시 오언즈, 타이거우즈 등 거물급 스타들이 받았고, 야구계에서는 재키 로빈슨, 조 디마지오, 테드 윌리엄스 등 실력과 상징성을 겸비한 인물들에게 주어졌다.
그 전년도에는 베이브 루스와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사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대통령 자유메달 훈장을 수상한 소감에서 첫 째로 신, 둘 째로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사실 메이저리거들이 신에게 공을 돌리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2006년 <메이저리그의 영웅들>이 발간되었는데 빅리거 30명이 이룬 성취의 인간관계를 종교로 풀어낸 일종의 간증집이다
그런데, 마리아노 리베라는 좀 다르다.
그를 알면 알수록 신에게 가장 먼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야구를 하게 된 것부터가 그렇다.
파나마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나 축구와 펠레를 좋아했던 그는 다리를 다치면서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지역팀 경기에서 일회성으로 마운드에 오른 것이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뉴욕 양키스와 정식 계야까지 맺게 되었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당시 야구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을 뿐 메이저리그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맺기 전까지 집을 떠나본 적도 없고,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을 정도였다.
2019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후 가졌던 <베이스볼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는 이와 관련된 일화가 소개 되어있다.
마이너리그 시절 누군가 행크애런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그가 누구인지 몰라 주위를 당황하게 한 사건에 대해 묻자 마리아노는 애런을 몰랐던 것은 맞는데 그게 마이너리그 때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이후였다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도 베이브 루스는 알았다고 항변함)
그는 계획에 전혀 없던 일들이 일어나면서 메리저리그에 발을 디뎠고 명예의 전당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652세이브를 남긴 마리아노 리베라의 투구를 정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컷 패스트볼(커터)이다.
류현진의 주무기 중 하나로 정착되어 더욱 자주 언급되는 구종이다. 빠른 공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컷 패스트볼은 예전부터 존재했고, 플로리다 말린스와 뉴욕메츠에서 전성기를 보낸 알라이터의 주력 구종이기도 했다.
1995년 데뷔한 마리아노는 1996년부터 구원투수로 각광받았지만 이때도 빠른 공에 의존한 투수였다. 그러다 1997년 6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운명의 순간을 맞이했다.
동료 투수 라미로 멘도사와 평소처럼 캐치볼을 하다가 멘도사가 “리베라의 공이 예전과 달리 자꾸 이상하게 휜다” 고 하자 당시 불펜코치였던 마이크 보젤로는 그날 리베라의 공을 받아보면서 실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동안 공의 이상한 움직임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리베라는 마이트 보젤로 코치의 도움을 받아 그 움직임을 새로운 무기로 탈바꿈시켰다.
컷 패스트볼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시점부터 마리아노 리베라의 성적은 경이적인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3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1998년 부터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컷 패스트볼을 설명할 때마다 마무리 보직의 시행착오를 겪던 시점에 ‘신이 내려준 선물’ 이라고 이야기 했다.
동시에 경건한 마음가짐과 생활태도가 겸비되어야 신의 선물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