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벨과 세바스찬 푸칸의 공통 철학
익스트림 스포츠 중에서 야마카시 처럼 내면의 성장을 주장하는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동양무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증거 중 하나다. 특히 세바스찬의 생각은 동양의 무술가 이소룡의 철학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파쿠르와 프리러닝은 그 목적이나 목표에서 일정 정도 차이가 있지만, 가장 기본을 이루는 철학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이 닮았다. 둘의 공통적인 철학은 다음과 같다.
>>폭력을 거부한다
파쿠르, 프리러닝은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유연함을 깨우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하나의 길이다. 그러므로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인 것은 성격과 맞지 않다. 트라세들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오직 열정과 창조일 뿐이다.
>> 경쟁하지 말라
트라세에게 경쟁이란 환상이다. 굉장한 것을 추구할 필요도 없고, 다른 이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다. 경쟁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는 ‘승자는 기억에 남고 패자는 잊혀진다’는 냉정함뿐이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길일까? 파쿠르, 프리러닝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렇기에 트라세들은 상금, 트로피, 돈, 명성, 영광 등을 쫓지 않는다.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다 보면 스폰서나 전문업체와의 계약체결과 같은 상업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 리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쿠르, 프리러닝을 함에 있어서 리더는 필요하지 않다. 그룹 내에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이나 양식을 쫓을 필요는 없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마카시 초보자들에게 세바스찬 푸칸이 전하는 말!
“프리러닝은 자신의 능력을 재발견하고 자신을 다시 찾는 경험입니다. 육체와 정신, 환경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죠. 나는 프리러닝을 통해 자유에 대한 감각과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얻습니다. 이는 아주 위대한 경험입니다.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매일 연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역시 동작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프리러닝을 매일 연습하기는 하지만 어떤 운동이든 재미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야마카시 팀
오늘날 파쿠르와 프리러닝의 모태가 된 움직임의 기술들을 개발한 친구들이 모여서 1980년대 말에 결성된 최초의 파쿠르 팀 이름이다. 처음에는 데이비드 벨과 함께 얀 노트라, 프레드릭 노트라가 그 멤버였으며, 얀의 제안으로 세바스찬푸칸이 어울리게 되며, 후에 샤를 페리에르, 말릭 디우프, 갈레인 엔구바, 챠우벨 딘, 윌리엄스 벨이 합류하여 1997년 5월 31일 야마카시 팀이 정식으로 만들어진다.
지속적으로 동작을 연구하고 철학을 발전시켜 나가던 중, 소방관으로 재직중이던 데이비드 벨의 친형 장 프랑수와 벨의 권유로 소방서 행사에서 맨몸으로 이곳저곳을 누비는 묘기를 보여준다. 그들의 놀라운 몸놀림에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과 전폭적인 지지가 쏟아졌고, 곳곳의 행사에 초청받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들에게 제의가 하나 들어온다. 프랑스의 매우 유명한 오페라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2년 동안 전국투어를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팀을 유명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운동을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동시에 생계비를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벨과 세바스찬 푸칸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면 끌렸지만 이런 장기 순회공연은 자신들의 의도에 어긋나는 것이며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를 반대했다. 결국 야마카시 팀은 이 사건을 계기로 1998년 2월 17일 해산하게 된다. 데이비드와 세바스찬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4월 11일 ‘야마카시’로 새롭게 태어났으며 같은 이름의 연합을 창설한다.
그 이후 프레드릭 노트라가 활동을 중지하고, 대신 현재의 멤버 로렌트 피에몬테시 Laurent Piemontesi가 합류했으며 1998년 브루노Bruno&패트릭 지라드Patrick Girard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첫 단편영화 <Le Message>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에도 이들은 공연 <노트르담 드 파리>(1998~2000), 다큐멘터리 영화 JeRap Donc Je Suis>(1999)에 참여했으며, 영화 <택시>(2000)에서는 복면 닌자로 인상적인 스턴트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서 뤽 베송의 눈에 띤 이들은 이후 <야마카시>(2001) 영화에 주연으로 7명 전원이 출연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한국에는 <야마카시2>로 알려진 〈Les Fils Vent>(2003)에 다시 참여했으며, <태양의 서커스>에는 얀과 로렌트가 트레이너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들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2005년 마제스틱 포스 상표가 만들어진 것이다. 마제스틱 포스는 야마카시 팀의 첫 번째 단편영화인 <Le Message>의 감독 브루노 지라드의 지원과 함께 설립된 독립 프로덕션으로 얀 노트라, 로렌트 피에몬테시, 쇼 벨 딘이 창립 멤버다. 이 단계에서 윌리엄스 벨과 샤를 페리에르, 말릭 디우프는 독립을 선언한다.
팀의 핵심멤버 중 한 사람인 얀 노트라는 엄격한 훈련과 트레이닝 방법을 대입시켰으며, 스테판 비그록스는 다양한 동작을 발전시키는 작업 중이다. 현재 많은 이들이 시도하는 ‘킹콩 볼트’라는 기술을 처음 만들어낸 것이 바로 스테판이다. 이들은 파쿠르 제너레이션스와 협력하여 고난이도 기술과 무브먼트를 전파하기 위해 ADAPT(Art Du Deplacement And Parkour Teaching Certification) 아카데미를 프랑스와 영국에서 운영 중이다.
야마카시 팀의 막내였던 윌리엄스 벨은 합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을 하며 초청멤버로 참여하고 있으며, 샤를 페리에와 말릭 디우프는 ‘GRAVITYSTYLE’ 이라는 팀으로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UPG 팀과 퍼포먼스를 하는 등 프랑스, 독일, 영국, 아일랜드와 훈련을 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인 갈레인 엔구바 보엑은 ‘GTN’ 이라는 그룹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영화 <야마카시>에서 로켓 역할을 맡았던 흑인 친구를 떠올리면 된다.
>>야마카시 팀의 야마카시 철학
아크로바틱스이 들어간 것은 프리러닝, 움직임의 효용성을 중시하는 것이 파쿠르라면 과연 야마카시 팀의 아트 뒤 드플라스망은 무엇일까? 많은 기사와 인터뷰 영상에서 데이비드 벨의 파쿠르와 세바스찬 푸칸의 프리러닝에 대한 자료들이 알려지다 보니 초기에 같이 했던 아트 뒤 드플라스망은 묻혀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철학이 파쿠르, 프리러닝의 전신임을 생각할 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 파쿠르 제너레이션스에서 개최된 ‘YAMAKASI Q&A at RendevousII’ 에서 스테판 비그록스가 말한 내용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이동의 기술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데이비드는 말합니다. 아트 뒤 드플라스망과 파쿠르의 차이는 그냥 이 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야마카시는 이 운동을 파쿠르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시작했고, 그 이후에 데이비드와 몇몇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체계화시켰죠. 말하자면 저희는 2세대입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다 같은 운동이라는 거죠.”
여기에 차우 벨 딘은 한마디를 더 덧붙인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은 9명이었습니다. 대부분 우리 9명이 같이 운동을 했죠. 나의 사촌 데이비드 벨은 이것을 파쿠르라고 불렀고, 나는 아트 뒤 드플라스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냥 이름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 나름대로의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파쿠르든 아트 뒤 드플라스망이든 같은 겁니다. 여러분이 이 운동을 하면서 즐겁고 기쁘다면 이름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굳이 구분하거나 차이를 둘 필요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마인드입니다. 좋은 마인드가 있다면 뭐가 문제겠어요. 파쿠르를 하든, 프리러닝을 하든, 마샬아츠를 하든, 아트 뒤 드플라스망을 하든 다 같은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운동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길인 거죠.”
이 인터뷰를 보면 숱한 명칭 논쟁과 정통성에 대한 싸움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벨이나 세바스찬 푸칸을 좋아하고 그들이 존경받을 인물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 각자의 스타일을 정의 내리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게 여겨질 때도 있다. 각각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억지로 철학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데이비드와 세바스찬은 ‘상업을 반대한다’며 경제적인 유혹을 뿌리치고 상업에 자신들을 매도하지 않기 위해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을 거절했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 자신들이 광고나 영화 등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상업적인 활동반대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실망을 주기도 했다. 이들의 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가’라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이것만큼 명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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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야마카시 대표 인물들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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